현업 기획자들에게 "기획자로서 필요한 업무 역량에 대해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질문한다면,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꼽을 것이다. 실제로 기획자 모집 공고에서도 "다양한 구성원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자격 요건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된 부분은 많지 않다.
게임 기획자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직군인 만큼, 상대를 설득하거나 공감을 끌어내는 것뿐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주요 프로젝트 결정 사항을 논의하거나 진행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등, 타인과의 대화는 업무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렇듯 많은 대화를 하고 그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망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기획자에게는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특히, 기획자의 주요 대화 이벤트는 회의를 통해 진행되기도 하지만 일상 대화가 자연스럽게 업무적으로 연결되거나 회의에서 논의되지 못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상황은 매우 다양하고 대화를 끌어나가는 기술도 많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대화의 기술만큼 중요한 것은 대화 상대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상대의 심리 상태는 대화 이후 얻을 수 있는 결과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나에게 호의적인 상대와의 대화 결과와 그렇지 않은 상대와의 대화 결과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가져온다. 물론 우리는 업무적인 상황에서 감정의 통제를 받지 않도록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하지만, 현실은 감정에 지배받는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는 쉽지 않다.
심리 상태가 중요한 이유는 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상대의 심리 변화를 잘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 호의적인 상대가 적대적인 상대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획자는 상대의 심리 상태를 잘 파악하고 상황에 맞는 대화를 끌어나갈 수 있는 유능한 협상가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사회생활을 통해 본능적으로 체득한 기술일 수 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매우 익숙하다. 따라서 단순히 내가 보고 느낀 것만으로 상대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에 심리 상태를 더욱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를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활용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던 중 인간의 비언어적 행동을 통해 마음을 읽는 기술에 대한 책은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책에서 소개된 비언어적 행동 분석은 상대와의 대화 중 심리적 변화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적절한 대응을 통해 원하는 환경을 만들고 대화를 주도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술이다. 심리 분석 서적은 언제나 주요 관심사였는데, 이 책의 주된 내용은 인간 행동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 행동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전체적으로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지만, 행동 분석의 예시와 심리 상태 설명은 북미나 유럽 사람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대한민국 독자에게는 일부 예시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특히 한국 사람은 단체 생활을 통해 다양한 비언어적 행동을 자연스럽게 관찰하고 이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 저자가 제시하는 행동 패턴이 새로운 통찰로 느껴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책은 행동 패턴 분석을 작은 단서에서 시작해 큰 사건 해결로 이어지는 결론을 예로 들며 자신의 주장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중간 과정이나 심리 변화의 구체적인 전개가 부족하여, 특정 행동 양식 하나로 상대의 심리 상태를 오해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저자는 이러한 분석이 참고용임을 강조하지만, 단순한 주의 사항만으로는 행동 패턴 분석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잘못된 독자 판단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기존에 감각과 경험적으로 짐작하던 부분을 특정 행동의 발생 원인과 시점, 그리고 상대의 심리 상태를 짚어주는 부분은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한, 이 책을 읽은 뒤 주변 사람들의 현재 행동 양식을 보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일부 행동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알게 된 점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실제 일부 행동 양식은 내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기획안을 리뷰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 양손을 책상에 지지한 상태로 똑바로 상대를 주시한다면, 이러한 행동만으로도 상대에게 주장에 대한 신뢰,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 반대로, 상대의 반발 이야기를 듣는 도중 첨탑 모양의 손동작을 만들며 경청한다면 상대 의견에 대해 암묵적인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어 반발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아니면 대화 도중 상대가 손가락 깍지를 끼거나 다리를 의자에 고정한다면? 아니면 천돌에 손이 간다면 상대는 나와의 대화가 불편하거나 스트레스를 만드는 상황이라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한 반응을 줄이고 상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대화를 풀어나가 편안한 인상을 제공할 수 있다.
상대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화를 주도하는 기술은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한층 높이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 책은 비언어적 행동을 통해 심리 상태를 분석하고 대화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법들을 제공한다. 특히, 협상이나 설득이 중요한 상황에서 자신감을 표현하거나 상대의 반응을 미리 파악해 대처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맹신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화적 맥락과 경험에 맞게 재해석해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넘어서, 타인의 심리를 더 깊이 이해하고 협력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책은 직접 구매 후 읽은 뒤 포스팅합니다.
책은 검색 후 가장 저렴한 도서를 구매하세요.
'휘갈기는 도서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 (0) | 2024.07.03 |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0) | 2024.03.17 |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 (0) | 2024.01.13 |
역행자 (0) | 2024.01.07 |
게임의 심리학 (0) | 2024.01.04 |